나의 대인공포증이 한 마리의 개미에 의해서 치료될 수 있다니!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예전까지만 해도 나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극도로 혐오하는, 극심한 대인공포증의 다음 진화 단계인 인간 혐오의 단계에 있는 그러한 사람이었다. 나는 과거 나 자신이 아직까지도 간직하고 있다고 나 자신이 추정하고 있는 일종의 동심에서 그려내고 있는, 이상적이며 충분히 아름다운,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세계의 수많은 헌법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그 가치를 충분히 반영하는 사회와 실제 내가 살아가면서 시달리고 있는 물질만능주의로 더럽혀진 잘못된 사회, 뉴스만 들여다보면 서로가 서로를 죽이다 못하여 끊임없이 으르렁되고 위협하며 물어뜯는 맹수, 짐승과 다름없는 우리 인간들의 행태를 보면서 너무나도 깊은 공허와 실망과 절망에 스스로를 빠뜨림으로서 끊임없는 회의에 휘청이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이런 디그리오크라시로 깊이 무장한 사회에서 대학이라는 사실 알고 보면 별 일도 없을 - 그러나 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세계에서는 우리 인생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사실상 평등한 국가라고 헌법에서 주창하고 있으나, 평등하지 않은, 계급을 결정하게 되는 쓰잘데기 없으면서도 쓰잘데기 있는 그 존재 때문에, 생활기록부의 관리를 위하여 독서록을 쓰려고 오랜만에 예전에 한 번 읽은 바가 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다시 펼쳐보니,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고, 그 구절이 이러한 나의 인간 혐오를 조금이나마 달래 주었기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 (1993, 열린책들, 이세욱 역)의 제3권 “개미의 날”에서 233페이지부터 시작하는 정말 아름다운 구절 - 인간이 아닌 개미, 병정개미 103호가 인간을 며칠동안 그를 위해 마련된 소형 텔레비전 영상을 통해 관찰하고 평론하는 구절을 여기에 조금 옮겨 적어둔다.
수신 “당신들은 나의 평가가 어떻게 나올까 궁금할 것이다. 좋다. 나는 당신들을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보았다고 믿는다.”
개미는 텔레비전 화면에서 머리를 떼어 내고 뒷다리로 버티고 선다.
수신 “나는 당신들을 완전하고 명백하게 안다고 주장하지는 않겠다. 당신들의 문명은 너무 복잡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 본질을 나름대로 파악했다.”
개미는 뜸을 들이면서 긴장을 고조시켰다. 역시 개미든 손가락이든 개체를 다루는 데 이골이 난 103호였다.
수신 “당신들의 문명은 매우 복잡하지만, 나는 많이 보았기 때문에 그것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당신들은 비뚤어진 동물들이고, 당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을 존중할 줄 모르며, 유독 당신들이 돈이라고 이름 붙인 것을 긁어모으는 데에만 관심을 쏟는 동물들이다. 당신들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나는 두려운 생각이 든다. 그것은 크건 작건 간에 살인의 연속일 뿐이다. 당신들은 우선 죽여 놓고 그다음에 토의를 한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당신은 당신들끼리 서로 파괴하고, 자연을 훼손하고 있다.”
평가의 조짐이 좋지 않았다. 세 사람은 얘기가 이렇게 길거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수신 “하지만 당신들의 세계에도 나를 매혹시키는 것들이 있다. 아, 그건 바로 당신들의 그림이다! 특히 나는 그 손가락들…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무척 좋아한다. 세상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그림을 통해서 나타낸다는 생각, 순수한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위해서 실용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물건을 만든다는 생각, 그것은 놀라운 발상이다! 우리 세계에 비유하자면, 그것은 우리가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냄새를 맡는 즐거움을 위해서 페로몬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당신들이 “예술”이라 부르는 그 무상(無償)과 무용(無用)의 아름다움, 그것은 당신들이 우리보다 우월한 점이다. 우리 사회엔 그러한 것이 없다. 당신들의 문명에는 예술과 무용의 열정이 풍부한 것 같다.”
발신 “그럼, 당신은 우리를 벨로캉에 데려가는데 찬성하나?”
개미는 아직 대답하려 하지 않는다.
수신 “당신들 집에 도착하기 전에 나는 바퀴를 만났다. 그 바퀴들이 나한테 가르쳐 준 게 있다. 서로서로를 사랑할줄 아는 자들은 사랑을 받고, 서로서로를 도우려는 자들은 도움을 받는다고…“
개미는 자신의 주장에 대해 확신하면서 더듬이를 흔들어댄다.
수신 “나는 그 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입장을 바꾸어서 물어보고 싶다. 당신들은 손가락들이라는 종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가?”
낭패스러운 일이었다. 레티샤도 아서 라미레도 그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할 만한 사람들이 명백히 아니었다!
개미는 담담하게 자기 논리를 펼쳐 나간다.
수신 “당신들은 내 페로몬을 이해하는가? 당신들은 다른 사람이 당신들을 사랑할 마음이 들도록 서로를 사랑하는가?”
발신 “그건…“
수신 “당신들 자신들이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당신들이 우리처럼 다른 존재들을 사랑할 거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발신 “그건 말하자면…“
수신 “당신들은 나를 설득하기 위해서 효과 좋은 페로몬을 찾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다. 내가 당신들한테서 기대했던 설명들은 당신의 텔레비전이 죄다 나에게 제공했다. 나는 텔레비전에서 손가락들이 서로 돕고, 다른 손가락들을 구하기 위해 먼 길을 달려가며, 붉은 손가락들이 갈색 손가락들을 돌보는 내용의 기록 영화를 보았다. 당신들이 개미라고 부르는 우리는 결코 그렇게까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멀리 떨어진 둥지를 원조하러 달려가지 않으며, 다른 종의 개미들을 구하러 가지 않는다. 나는 플러시 천으로 만든 곰 임형 선전도 봤다. 그것은 하나의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손가락들은 그것들을 껴안고 애무했다. 손가락들의 내면에는 남에게 베풀 넘치는 사랑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은 개미의 결론을 요모조모로 예상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런 평가는 전혀 뜻밖이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이나, 의사들, 플러시 천으로 만든 곰 인형 덕분에 인간이란 종족이 개미의 눈길을 끌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었다!
수신 “그게 전부는 아니다. 당신들은 2세들을 잘 보살필줄도 안다. 당신들은 미래의 손가락들이 오늘날보다 더 우수하기를 희망하고, 발전하기를 열망하고 있다. 마치 동료들을 개울 저편으로 건네줄 다리를 만들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병정개미들 같다고나 할까. 젊은 손가락들의 전진을 위해서라면, 늙은 손가락들은 언제든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 그래, 내가 본 모든 것, 영화, 뉴스, 광고들은 현재의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에 대한 아쉬움과 미래에는 그것이 개선되리라는 희망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그 희망으로부터 당신들의 “유머”가 분출하고, 당신들의 “예술”이 생겨나고 있다.”
레티샤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에게는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설명해 줄 저 개미와 같은 존재가 필요했었다. 103호의 얘기를 듣고 난 그녀는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 느낌이었다. 그녀의 대인 공포증이 한 마리의 개미에 의해서 치료될 수 있다니! 그녀는 갑자기 동시대인들을 더 잘 이해하고 싶은 충돌을 느꼈다. 사실 이 세상에는 훌륭한 동시대인이 많이 있다. 그녀가 평생 깨닫지 못한 것을 이 개미는 불과 며칠 동안 텔레비전을 보고서 깨달은 것이다.
“개미”, 베르나르 베르베르 저, 이세욱 역, 열린책들, 1993, 제3권 “개미의 날” 233 ~ 236p 일부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