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상

뱅상은 고통의 비명을 내질렀다. 자기 머릿속에서 커다란 문 하나가 열리면서 이제껏 대뇌 피질의 한 귀퉁이에 눌려 있던 잠재적 능력의 대부분이 해방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울고 있었다. 세 신관은 그를 묶고 있던 밧줄을 풀어주고 그가 다시 일어서도록 부축하였다. 그는 자기에게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몸의 속박만이 아니라 정신의 속박도 풀린 느낌이었다. 그는 이제 수의 무한한 지평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래, 667700996은 염소도 영양도 아니고, 하나의 수인 게 분명해.”

뱅상은 창가로 다가갔다. 그는 지식에 취해 있었다. 그 전까지는 감질나게 찔끔찔끔 전해 받던 지식을 한꺼번에 엄청나게 받아들이고 난 터였다.
그는 수의 대수도원 휘장이 찍힌 자기 옷을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창문 너머로 눈을 돌려 가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무한한 수들로 가득 찬 세계였다. 그는 아찔한 기분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정신에도 천장이 있다면, 그의 천장이 갑자기 훌쩍 높아진 셈이었다. 과학자라는 사람들은 거창한 학위와 쟁쟁한 직함을 내세우면서 지식이 무슨 보석이라도 되는 양 그것을 가르쳐 주는 데에 인색하기 십상이었다. 그는 그들이 새로운 지식을 가르쳐 줄 때마다 마치 그들이 잡고 있는 줄을 조금 늘여주기라도 한 것처럼 겸허하게 감사를 표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 정신의 천장이 높아지고 보니, 그 모든 지식이 한낱 감옥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줄을 조금씩 늘여준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그를 여전히 매어두고 있는 한 그것은 어디까지나 속박일 뿐이었다.

우리는 줄에 매이지 않고도 살 수 있다.
지식을 탐구하기 위해 공인된 과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
그저 자유롭다는 것만으로 자격은 충분하다.

무릇 학문이란 자유의 행위여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미리 짜놓은 틀이나 숭배의 대상이나 지배자나 선입견에 속박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는 자유, 그런 자유가 보장될 때 학문은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17은 엄격한 계급 제도의 최상층을 뜻하는 것도 아니고, 지적인 위업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었다. 17은 그의 감옥이었다. 그가 남들보다 많이 가졌다고 생각했던 것은 수와 숫자의 무한한 세계에 대한 지극히 초보적인 지식일 뿐이었다. 그는 이제 하나의 대륙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 대륙의 기슭만을 겨우 밟아 보았을 뿐이었다.

뱅상은 지평선을 응시하다가 자기의 신관복을 벗었다. 신관 겸 기사라는 신분을 더는 유지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이제 자유로운 정신을 지닌 진리 탐구자였다. 수와 숫자의 모든 한계를 넘어서서 자유롭게 세계에 관해 사유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사유는 정신의 감옥에서 해방되어 수의 무한성을 즐기게 될 것이었다.

“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저. 이세욱 옮김. 열린책들(2016). 159p ~ 중